왕궁과 왕성, 도성 └ 백제 왕성

풍납토성의 왕성 여부 (1) - 1

다른 주제 신경쓰다가 이제 포스팅 올린다. W.A님의 반론 잘 봤다. 이 문제를 지켜보면서 뭔가 얻어 보려 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오해와 문제는 풀어야 할 것 같다.

우선 ‘왕궁이 있어야 왕성이다’는 논리는 누가 주장이냐는 차원이 아니지 않은가? 이건 기본적인 상식을 확인한 것일 뿐인데... ‘왕궁이 없는 왕성’이라는 것이 왕정체제를 갖춘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얘기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풍납토성에 한정시켜 보아도 이렇게 되어야 할 것 같다. 어느쪽이냐에 따라 뒤에 반론의 논지가 달라지니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왕궁이 없어도 왕성으로 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아직 왕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왕성이라는 주장을 철회하기는 이르다’라는 쪽으로 가는 게 정상인 것 같은데.

내친 김에 여러 사람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개념 하나 더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 같다. 풍납토성 왕성 논쟁을 하다 보면 왕성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이 도성으로 바뀐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왕궁과 왕성, 도성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잡아놓지 않고 쓰다보니 혼선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W.A님이 이를 악용한다고 몰 생각은 아직 없다.

그런데 학계 인사 중에는 고의적으로 이 개념의 혼란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즉 풍납토성을 두고 도성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지금 벌어지는 핵심문제인 왕성 문제와 상관없이 너무나 당연히 맞는 말이 되니까.

그런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강샘과 필자는, 나중에 말꼬리잡혀 곤욕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개념 정의를 했다. 왕궁은 왕족이 살고 집무를 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공간, 왕성은 왕궁뿐 아니라 민가들까지 포함된 성, 도성은 왕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지어진 다른 성들까지 포함한 공간. 말꼬리 잡힐 각오를 하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오늘날에 대입시키면 이렇게 된다. 왕궁은 청와대, 왕성은 서울, 도성은 수도권.

그러니까 풍납토성에 ‘도성’의 일부라고 하면 정말 미꾸라지 논리가 되어 버린다는 거 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경기도의 변두리 도시도 ‘수도권’이라고 하면 별 문제 없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청와대와 서울의 위치를 찾는 논쟁에서 일산이나 용인 같은 도시 찍어놓고 ‘수도권’이니 여기를 서울로 쳐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몰아가면 어떤 꼴이 되는지 짐작할 수 없을까? 풍납토성을 두고 도성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면 바로 이런 꼴이 되는 셈이다. 이런 혼란을 방지해가면서 논쟁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까 왕궁이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왕성 아니다’라는 말을 해도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공주나 부여는 차원이 다르다는 말을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간단하다. 현재 발굴성과로는 ‘남은 지역에서 왕궁이 나올 공간이 없다’는 말을 할 차원이 아니니까. 전체 공간의 윤곽이 뚜렷하고 남은 공간이 협소한 풍납토성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너무 길어지면 부담스러우니 W.A님이 궁금해하는 동시에 오해가 있는 부분 하나만 덧붙이자.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는데, 백제 왕성 구조를 어떻게 짐작하느냐는 문제다. 여기서 상당한 인식의 격차가 나는 것 같은데..

W.A님은 왕성 건설 문제를 요즘 같이 참신한 발상이 가능한 단순 건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문제를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당시는 예법이 존중받는 시대다. 예법은 권위를 의미하고 생활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준다.

그러니 왕궁,왕성, 도성 같이 나라의 중심이 되는 건물과 도시를 건설할 때도 아무렇게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법도를 따르지 않으면 당시에는 행세를 하기가 어렵다. 고공기는 바로 그 교과서 역할을 했던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그러니 백제왕성의 기본구조나 규모를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은 좀 무리인 것 같은데.... 이만 하고 또...


덧글

  • DreamersFleet 2011/06/13 09:58 # 답글

    W.A. 님 : 고대국가의 도성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 - 거대한 판축성벽, 제레공간, 대규모 저장공 혹은 수혈 유구 등 중앙 통제 대량 자원, 환호 목책의 방어시설 등등

    블레이드님 : 왕궁지가 없으면 절대 왕성으로 인정할 수 없다.

    지금 대략 블레이드님 말씀대로 대체로 풍납토성에 따로 대형의 왕궁자리가 나올 여지는 없어보입니다(물론 다 파봐야 알겠습니다만). 그러나, 단지 문제는 "왕궁지가 없다면 왕성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논쟁에 진전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애당초 블레이드님께서 "풍납토성이 왕성이나 도성이 아니지 않는가?" 혹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정도로 이야기 하셨다면 그 다지 큰 논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왕궁자리가 없다"는 한 사실로 인해 그렇다고 주장하는 다수들의 주장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즉 근거가 부족한 주장으로 평가하셨기 때문인 듯 싶습니다.

    어쨌든 더 이상은 위와 같은 이유로 논쟁이 평행선을 달릴 것 같으니 이 선에서 일단 마무리 되는 것이 좋겠군요.

    첨언하자면, 블레이드님 주장이 그 입지면에서 애당초 불리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풍납토성이 도성이 아닐 수도 있다" 라는 주장을 너머서 "풍납토성이 도성이라고 볼 근거가 취약하다"란 주장까지 하셨기 때문에 후자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선 훨씬 강력한 증거들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풍납토성이 수도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여러사람들에게 환기시키신 것은 하나의 의의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단지 그 과정에서 너무 적극적 주장을 펼치신 것이 논쟁에서도 딜레마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당장은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주장을 더 보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6/13 11:20 #

    저도 트랙백을 달았지만...

    용어 정리 문제가 해결되면 어느 정도 평행선보다 좁힐 수는 있을 겁니다.

    뭐 개인적으로 강찬석 선생님과의 토론보다는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 넴가1021 2011/06/13 11:50 # 삭제 답글

    비전공자 인지라 지나가다 궁금해서 현재 논쟁과는 별개의 질문 하나 올립니다.
    옛날 광개토대왕 시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 3 국 국민들의 생활양식은 어떠했냐요?
    지금이야 한민족이라면서 국사시간에 한번에 묶어서 배우지만 그 시대엔 꽤 떨어진 곳에서
    발생된 3 국가인지라 생활양식이나 도시구조도 많이 달랐을거 같은데 특히 고구려 같은 경우는
    유목민족과 가까운 지역에서 파생된 국가라 (기마민족이라고 하는 말도 있는거 같구...) 영토나
    마을이라는 개념도 약간 달랐을거 같은데 중화쪽 양식과 비슷한 생활을 했나요? 그리고 백제 같은 경우는 형제간의 나라라고도 한거 같은데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얼마나 비슷하고 달랐나요? 정말 궁금해서 묻는것이니 아시는 분 있으시면 친절하게 답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Warfare Archaeology 2011/06/13 23:27 #

    제가 간략하게 적어보겠습니다(남의 블로그에서 이 무슨. ^^;;).

    고구려의 경우, 유목민족과 가까운 지역에서 파생된 국가라 볼 수도 있지만, 국초 생활상을 살펴보면 정주문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녀산성 정상부에서는 고구려 초기의 건물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일반적인 수혈건물지로 현재 오녀산성 아래 박물관에 복원된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을의 개념이 달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시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직 고구려에서 마을 단위의 대규모 주거군이 확인된 바가 없어서, 그쪽은 잘 모르겠습니다. 단,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확인된 주거지와는 내부 구조(쪽구들의 존재 여부 등)라든가,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 등에 있어서 차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제의 경우, 고구려에서 파생된 집단이 주축이 되서 건국한 나라인데, 흔히 백제 주거지라고 하면 呂자형, 凸자형 주거지처럼 출입시설 일부가 돌출된 주거지를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방형, 원형 등의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주거지의 전통을 잇는 재지계 주거문화와 차별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백제계 주거지로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거문화의 차이는 환경적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며, 각 문화권마다 독특한 점이 엿보이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문화권을 나누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물론 내부에서 문화권마다 다른 토기 및 철기들이 수습되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당시 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고요.

    이상입니다.

    이에 대해서는『한국 생활사박물관』이라는 시리즈가 있는데, 그 책의 고구려, 백제편을 살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칼라 도판과 그림, 사진들이 보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우니깐요.

    그럼 이만~
  • 넴가1021 2011/06/14 05:49 # 삭제

    감사합니다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Warfare Archaeology 2011/06/14 13:13 #

    네~ 도움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 ㅋㅋㅋ 2011/06/13 12:38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롤러바이 2011/06/13 13:02 # 삭제 답글

    이글루스 식민빠들의 무분별한 인신공격과 욕질이 도를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저도 블레이드선생님께서 여기서 이런 피해를 받을 제2, 제3의 피해자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귀찮으시더라도 죄질이 불량한 자 몇명은 관용을 베푸시지마시고 꼭좀 형사고발을 해주셨으면 바랍니다.
  • ㅋㅋㅋ 2011/06/13 14:41 # 삭제

    저도 꼭좀 선생님께 부탁드립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