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대왕 띄우자고 무리한 것 아닌가? └ 잡글

6.9 방영된 역사스페셜은 드라마 광개토태왕 방영 특집 2부답게 ‘팍스 코리아나’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였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각 종족과 나라가 공동의 번영과 안정을 추구한다는 개념이라고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소리는 좀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고구려를 중심으로’라는 말만 잠시 가리고 보면 중화사상이 추구하는 바 그대로다. 즉 세상에 단 하나 뿐이어야 하는 천자를 중심으로 사해 또는 천하를 아우르는 위계질서를 잡아 나아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 종족과 나라를 당연히 천하의 중심인 천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당시 패권을 추구하던 나라들은 누구나 내세웠던 논리이고, 하다못해 근대 이전까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도 내세웠던 관념적 질서였다.

이런 전근대적 의식을 가지고 ‘오늘날의 한민족’ 운운 한 것은 좀 묘하다. 사실 여기서도 한민족이라는 말만 잠시 보류하면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핵심 논리인 중화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 바로 이런 구조니까.

여기에 더하여 광개토왕의 임나가라 정벌을 다루면서 신라를 너무 형편없는 나라로 만들어 놓은 것 아닌가? 여기서는 왜가 단독으로 신라를 침공해서 경주까지 함락시켜 내물왕이 북쪽 국경으로 도망쳐 광개토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처럼 묘사했다. 경북대 주보돈 교수의 인터뷰까지 곁들여서.

그런데 도대체 뭘 무슨 근거로 신라의 수도가 함락되었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사료에는 전혀 얘기가 없다. 제작진이 제시한 근거라고는 ‘왕이 탔던 내구마(內廏馬)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는 내물왕 45년의 기록뿐이다.

말하나마나 이건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 상징적 표현일 뿐이지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다. 이렇게 억지로 갖다붙인 사례를 빼면, 왜는 수백년에 걸쳐 여러차례 신라를 침공했지만, 성을 함락시키고 오래 유지했던 사례가 거의 없다.

이런 걸 근거라고 제시해놓고 내물왕이 ‘왜구의 공격 앞에 무력했다’, ‘수도를 포위할 만큼 (왜구가) 극성이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당시 수도가 포위되었다고 해서 현대전만큼 일방적인 위기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는 여러차례 소개했고, 역밸에만 해도 포스팅을 올렸다. 따지고 보면 이건 상식 수준인데, 왜 이렇게까지 해서 신라를 형편없는 나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한가지만 더 보태보자. ‘수도를 포위할 만큼 (왜구가) 극성이었다’는 근거가 내물왕 38년(393) ‘여름 5월에 왜인이 와서 금성(金城)을 에워싸고 5일 동안 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제작진이 여기까지만 보여주니까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정말 형편없이 약한 신라가 왜에 시달렸다고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뒤에 기록이 더 붙어있다.

장수와 병사들이 모두 나가 싸우기를 청하였으나, 왕이 “지금 적들은 배를 버리고 [육지] 깊숙이 들어와 사지(死地)에 있으니 그 칼날을 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성문을 닫았다. 적이 아무 성과없이 물러가자 왕이 용맹한 기병 200명을 먼저 보내 돌아가는 길을 막고, 보병 1천 명을 보내 독산(獨山)까지 추격하여 양쪽에서 공격하여 크게 쳐부수었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사람이 매우 많았다.

이 기록을 보면 쉽게 알수 있다. 신라가 자신이 없어서 농성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농성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왜군은 참패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제멋대로 편집해서 ‘허약한 신라’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광개토왕비에 신라가 위기에 몰리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한 것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소지가 크다. 일단 훈적비인 광개토왕비에서 자기네 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과장을 넣었음을 감안해야 한다. 또 그렇게까지 표현해야 할 다른 사정들이 작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복잡하니 생략하고 나중에 포스팅으로 보충하기로 한다.

여기에 또 한가지 무리는 중장기병에 대한 과대포장인 것 같다. 홍익대 김태식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마치 ‘당시는 중장기병을 누가 장악하고 있었고 운영할 줄 알았는가’가 전쟁의 결정적인 요소인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중장기병만 있고 활용할 줄 알면 무조건 전쟁에 이기나? 그게 아니라는 것도 거의 상식수준의 얘기다. 그리고 그런 논리라면 중장기병에 필요한 철제갑옷은 백제,신라보다 가야가 더 발달했다. 그래서 가야가 백제와 신라는 능가하는 세력이었나?

핵심적인 무기나 병과를 강조하려면 그게 결정적인 요소인지 아닌지부터 구별해놓고 따져야 한다. 그런데 공영방송 다큐멘터리가 그렇게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조그마한 변수 하나를 가지고 결정적인 요소처럼 둔갑시키는 일을 하면 곤란하지 않는가?


덧글

  • 2011/10/06 22: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慶大升 2011/10/06 22:59 # 답글

    그리고 奈勿王을 한글식으로 표기한다면 나물왕이 맞지 않나요? 이미 널리 쓰이는 말이라서 그렇게 표기하신 것이라면 이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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