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화(西歐化)의 시련 1 └ 성고선생 칼럼

어느 종교고 사상이고 독선화 하면 망한다. 고려는 불교가 독선화 해서 망했고, 조선은 주자학이 독선화 해서 망했다.

고려의 불교 사원은 특권을 이용해 토지를 겸병하고 인정(人丁)을 독차지함으로써 나라를 망하게 했다. 불교사원은 특권적으로 조세(租稅)와 역역(力役)을 면제받고, 절 에서는 대대적인 불사(佛事)를 끊임없이 올려 대니 국고는 메마르고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없었다. 불교를 혹신(酷信)하는 고려 귀족들도 일조를 했다.

조선시대 주자학도 그렇다. 여말선초의 사대부들이 주자학을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삼았을 당시에는 구귀족과 사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의지를 가지고 개혁에 임해 사회에 청신한 기풍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다른 종교나 사상과도 조화를 이루면서 조선왕조를 굳건한 기반위에 올려 놓았다. 사림들의 정치‧사회 개혁에 있어서도 주자학이 그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이는 주자학이 독선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퇴계(退溪)‧율곡(栗谷)등의 사림들이 조선적 주자학을 정립 하면서부터 주자학은 독선화‧교조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퇴계‧율곡 등이 그 이론적 틀을 만들었다면 우암(尤庵)은 이를 정치․사회의 독선적인 이념으로 실천했다. 그리하여 불교‧도교‧무속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유교라도 양명학(陽明學)과 같은 다른 사상은 이단(異端)으로 몰아 붙였다. 이른바 사문난적(斯文亂賊)이 그것이다.

동양의 종교나 사상은 본래 인본적(人本的)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신을 믿기보다 인간인 성인(聖人)을 존숭한 것이다. 그리고 종교 간에 역할 분담도 잘 되어 있었다. 유교는 현실세계를, 불교는 사후(死後)의 세계를, 도교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을, 무속은 기복신앙(祈福信仰)을 분담했다. 할아버지는 도교, 할머니는 무속, 아버지는 유교, 어머니는 불교를 신봉해도 아무탈 없이 한 집에서 잘 살았다.

그러나 이것이 권력과 유착될 때는 성격이 달라진다. 고려시대의 불교가 그렇고, 조선시대의 주자학이 그렇다. 다른 종교나 사상을 탄압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배적인 사상이 자신감을 가지게 될 때 더욱 그러하다.

조선시대에 독선적인 주자학에 대한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학(實學)이 그 예이다. 우암이 이끄는 노론(老論)이 주자학만을 신봉한 반면, 청나라에 항복하므로써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존명사대(尊明事大) 의리(義理)를 잃은 공신세력의 소론(少論)은 현실상황을 중시하는 양명학(陽明學)에 경도되었다. 그러나 내놓고 주장하지는 못하고 겉으로는 주자학을 하는척 하면서 뒤에서 양명학을 연구했다. 이른바 외주내왕(外朱內王)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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