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가 광개토태왕의 특징이 수군 동원? └ 잡글

그러고 보니 드라마 띄우려고 역사스페셜도 광개토왕 특집으로 나왔다. 당연히 여기서 강조했던 광개토왕의 케릭터 컨셉도 드라마와 같다. ‘평화를 사랑하는 전략가’ 다큐멘터리가 어쩌다 드라마 띄우는 수단으로 전락했는지 씁쓸하다.

‘평화를 사랑하는’이라는 컨셉은 다음편에 주로 다룰 모양이고, 이번 편에서는 주로 전략가적 면모를 강조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백제 침공 때 수군을 동원했던 점이다. ‘고구려판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이런 이름을 붙일 정도로 수군 동원이 강조된 이유는 뭐였을까?

여기서 중원대 서영교 관장의 말이 인용되었다. ‘수군의 접근은 적이 예측을 못한다. 전쟁에서 중요한 요소 하나가 적이 어디로 접근해오는지 판단하는 건데, 수군을 동원하면 그게 안된다’는 식의 내용이다.

그런데 좀 심했다. 당시 항법장치도 없는 수군은 지금처럼 먼 바다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형태로 접근하지 못한다. 해안을 따라 접근하는 이른바 ‘연안항해’를 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 두 척도 아니고 대함대가 해안을 따라 내려오는데, 이게 접근하는 걸 모를 정도라면 볼 장 다 본 나라다.

그래도 상륙을 막기 어렵다는 점은 있다. 그러나 이건 접근을 예측 못해서가 아니라, 빤히 보면서도 별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해안선 전체에 병력을 배치할 수 없는 당시 상황에서(이건 오늘날에도 어렵다) 정확한 상륙지점을 미리 알고 있는 않은 한, 상륙시점에 정확하게 병력을 배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함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따라간다 하더라도 지형 등 여러 장애가 많은 육상에서 움직이는 속도로 함대를 쫓아가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해상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상륙지점을 즉흥적으로 바꿔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정방이 바로 후자의 수법을 써서 백강에서 기다리던 백제군을 따돌렸다.

그러나 이것도 해안에 상륙할 때 이야기지, 함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더 심각한 곤란을 겪는다. 여기서는 당시 백제 한성을 풍납토성으로 간주하고(이것도 심각하게 따져야 할 또다른 문제이지만) 고구려 수군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공략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려고 했으면 엄청난 모험이다.

함대가 폭이 넓지도 않은 한강을 거슬러 올라왔다면, 강기슭에서 공격하는 적에 거의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한다. 이 꼴 당하지 않으려면 해안에 부대를 상륙시켜 강변을 장악하며 올라와야 한다. 당연히 많은 시간이 걸리고 기습효과는 사라진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방면으로 강에 접근한 육군부대가 미리 강변을 장악해야 하는데, 이러면 애초부터 수군을 동원한 덕분에 기습효과를 냈다는 말은 무색하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수군 동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당시의 전략적 상황과 면밀한 연계 아래 분석하는 게 정상이다. 이런 식으로 수군 동원 자체만 가지고 기습이라던가, 훌륭한 전략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곤란하다.

몇 년전 서영교 교수가 매소성 전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때 지적했던 문제였고, 장본인이 납득했던 문제였다. 마침 어제 서영교 교수를 만날 일이 었어서 물어봤더니 장본인도 제작진이 이런 식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 풍납토성을 공략한 고구려 수군’이라는 식으로 설정해놓았는지는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까지 못 봤다고 한다. 제작진이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 하나 바보 만들어버린 것 같다. 제작진의 입장 때문에 아무거나 갖다 붙여 인물을 미화하는 게, 공영방송 다큐멘터리에서 할 일을 아닌 듯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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