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도 퓨전인가? └ 잡글

이번 주에도 드라마 근초고왕에서는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여 실제와 다른 역사를 창조해놓았다. 드라마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이번 경우 제작진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있는 것 같다. 가뜩이나 시청률 나오지 않는 판에, 막판에 접어들어 만회할 기회를 잡아야 했을 테니.

사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전쟁의 양상은 극적인 면이 별로 없으니, 이대로 내보내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이번주에 방영된 백제와 고구려 전쟁은 사실 두 세 개의 전투를 합쳐 놓았다. 이 전투 중 하나는 지난번 시기와 관련되어 잠깐 소개 한 바 있다. 이 전투가 369년의 일이다. 이때의 전투는 쳐들어와 변경을 노략질하던 고구려군에 대해 태자였던 근구수가 이끌고 온 백제군이 반격을 하여 승리했다. 그러자 고구려군은 곧바로 퇴각했고, 장군 막고해의 충고를 받아들여 백제군도 추격을 멈추었다.

또 다른 전투는 371년 백제쪽에서 평양성 공격에 나선 전투가 있다. 원래 기록은 이렇다.

고구려가 군사를 일으켜 왔다. 왕이 이를 듣고 패하(浿河) 가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그들이] 이르기를 기다려 급히 치니 고구려 군사가 패하였다. 겨울에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쳐들어가서 평양성(平壤城)을 공격하였다. 고구려 왕 사유(斯由)가 힘을 다해 싸워 막았으나 빗나간 화살[流矢]에 맞아 죽었다.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백제군이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고국원왕이 유시(流矢:지금으로 말하면 유탄)에 맞아 전사하자 곱게 포위를 풀고 물러났을 뿐이다. 내용을 보면 쉽게 알아볼 수 있듯이, 양국의 운명을 건 대규모 전쟁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맛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전투를 합쳐 ‘퓨전’을 만들어서라도 양국의 운명을 건 대규모 전쟁으로 탈바꿈 시켜놓은 것이다.

고국원왕을 근구수가 쏴죽이는 걸로 나오는 것도 이래서일 것이다. 물론 근거를 갖다 붙이자면 못할 것도 없다. 중국에 보낸 백제의 국서에는 ‘고구려왕의 목을 쳐서 성에 걸어노았다’고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이후 백제군이 철수했음은 물론, 평양을 비롯한 고구려 거점이 백제의 수중으로 들어가지 않은 걸로 보아 신빙성을 두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극적 효과를 위해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낸 것은 또 있다. 바로 한성에서의 반란이다. 물론 실제로는 한성에서의 반란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드라마 제작진의 입장이 아무리 딱하더라도 그들의 입장 때문에 제멋대로 지어낸 역사를 믿어줄 필요는 없을테니까.

그리고 ‘백제가 근초고왕 이전까지 고구려와 전면전을 꿈 꿀 수 없었던 나라였다’는 나레이션 좀 민망하지 않은가? 드라마 초반만 하더라도 근초고왕의 아버지 비류왕이 고구려와 대방 땅을 두고 전면 대결을 한 것처럼 설정해놓지 않았나? 그래서 고국원왕이 손가락질 받을 것을 무릅쓰고 비류왕을 암살하려 했다고 해놓고서. 근초고왕 놓이자고 비류왕을 깎아내리는 꼴 되는 것 같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