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계가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부담스런 이야기

지금 학계가 식민사학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사례를 보여주었는데도 싹 무시하고 일부터 이런 말을 하는 자도 많을 테지만, 정말 몰라서 그런 사람도 있을 터이니, 따끈따근한 사례 하나를 더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

학술대회 ‘근대 100년 한국 역사학 연구의 반성과 제언’은 정말 많은 얘깃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사실 역사학계가 반성할 것은 많으니, 얘깃거리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발표제목은 「고려와 조선사」에 대한 반성과 제언을 제목으로 한 경기대 이재범 교수의 발표. 이 발표의 3장에 전쟁사에 대한 반성과 제언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이재범 교수는 ‘한국사에서의 전쟁에 관한 인식이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면서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사에서 전쟁에 대한 기억은 정체성이나 자존심에 훼손을 주는 경우는 생략하거나 축소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자국의 이민족으로부터 침략사에 대한 항쟁이 아니면 세계사적 전투도 소개하지 않는다는 점도 마찬가지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하필 이런 사례가 ‘백제부흥운동과 백촌강 전투’다. 이때 일본에서 지원군을 보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하고 있는 않은 현실이 문제라는 뜻이 되겠다. 그래야 할 이유는 백촌강 전투가 한국사에서 무시해야 할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일본의 전력이 170척의 배와 2만7천에 이르는 대군이었고, 이 정도 병력은 제1차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에 동원된 병력을 상회하는 숫자다. 그러니 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전쟁상황이라 할 만한 데에도 이를 빼놓았다는 불만인 셈이다.

물론 일리는 있다. 어찌되었던 있었던 사실을 빼놓는 것은 역사서술에서 좋은 일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재범 교수가 부여하는 의미까지 따라야 할까? 이재범 교수는 백촌강 전투의 의미를 이렇게까지 본다. ‘사실상 백제의 부흥운동은 일본 지원군의 패배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일본의 어떤 교과서는 백제의 실질적 멸망이 백촌강의 패배로 기인한다고 했을 정도다.’

여기서 ‘ 백제의 실질적 멸망이 백촌강의 패배로 기인한다고’한 일본 교과서가 어디일까? 바로 그 유명한 후쇼사 교과서다. 이 교과서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면 역사, 적어도 한일관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재범 교수는 바로 이 교과서에서 말하는 백촌강 전투의 의미를 대한민국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한 셈이다.

그렇다면 후쇼사 교과서가 말하는 내용이 기분 나쁘다고 해도 받아들여야만 할 만큼 확실한 내용일까? 여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신라나 당 쪽의 기록에서는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하는 데에 왜군에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당시 일본이 동원했다고 하는 병력 규모에도 심각한 과장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후쇼사 교과서를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일본이 백촌강 전투를 이런 식으로 몰아가려는 이유가 있었다. 그 줄기는 백촌강 전투에서의 패배 이후에도 당(唐)에 당당히 맞서며 일본 국내의 변혁을 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어떻든 당 수군과 일본 수군의 대결 구도로 이 전쟁의 성격을 규정짓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기본 구도부터 제멋대로 짜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이 전쟁의 기본구도는 점령군인 신라와 당 연합군에 대해 백제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부흥시키겠다고 일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체 전쟁의 핵심은 왜군보다 훨씬 더 많은 전투를 벌였던 백제 부흥군의 저항전쟁이었다. 신라나 당 측에서도 왜군이 아니라 부여풍을 중심으로 한 백제 부흥군을 핵심세력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왜군은 백제 부흥군을 도와주러 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랑 한번밖에 없었던 백강 지역에서 수군끼리 벌인 전투만 떼어내서 제멋대로 전체 전쟁의 성격인 것처럼 만들었다. 정작 주인공인 백제 부흥군은 빼버리고 상대역 중에서도 당과 단역 정도의 비중밖에 안 되는 왜군의 출연장면만 부각시켜 전체 줄거리인 것처럼 소개하는 꼴이다. 신라나 당 쪽의 기록에서는 백제 부흥운동을 진압하는 데에 왜군에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한 측면을 편집해버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것이다. 백제에 구원군을 보냈다는 사실을 일본 중심으로 부각시켜 식민사학적인 해석을 할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두고 ‘여기에 일본인의 정한론과 연결된 역사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 전투의 패배가 백제 부흥운동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한 것은 사실’이며 이런 의미를 가진 전투를 소개한 한국의 교과서나 개설서가 없다는 점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재범 교수의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렇게 보면 역사연구에 전쟁사 활용이 부진하다는 사실을 넘어,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 역시 시사될 것 같다. ‘역사연구에 전쟁사 활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제대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전쟁사를 활용하라는 뜻이지 악용하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전쟁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명분을 뒤에서 악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전쟁사의 활용이 부진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가 되겠다.

물론 제대로 전쟁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쟁사를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는 반면교사가 될 수는 있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무렇게나 전쟁사를 갖다 붙여도 뒤탈이 없는 풍조가 계속되는 한,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엉터리 연구는 이렇게 좋은 조건에서 발표되고 업적으로 쌓이는 반면에, 힘들여 연구한 양질의 성과는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매장당할 테니 말이다.

이 정도면 식민사학의 영향력은 물론이고, 그 대안이 제대로 모색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나?


덧글

  • DreamersFleet 2011/05/09 13:05 # 답글

    블레이드님의 글에 대해 역시 100% 동의는 못하겠습니다만, 다만 실명이 거론되니 함부로 거기에 대해서 평을 하기는 역시 부담스럽습니다. 왜냐면 사실 저희는 블레이드님만큼 저 사람을 잘 모르고 그렇다고 딱히 블레이드님말씀만 신뢰하여 그를 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군요.

    하지만 역시 인용된 부분만으로 보더라도 헛점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왜 저 거론된 인물이 저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선, 저나 블레이드님의 식견이 짧아 그의 논지상의 여러 유의미한 증거들을 무시한 결과 즉 비판자측의 잘못된 견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저것이 별 근거가 부족한 채 저런 평가가 내려졌다면 역시 일본의 식민사학적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 사람의 연구를 아무 생각없이 베끼다가 발생한 사건이거나 아니면 '환빠'들의 지적대로 그의 친일적 성향 때문에 저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동기도 이런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이런 말씀을 하실때 비꼬는 말투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이 나오지 단순한 매도는 더욱 갈등의 골을 깊게 할 뿐일 것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 블레이드 2011/05/10 20:53 #

    실명에 발표된 곳까지 밝힌 건 근거가 의심스러우면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고, 이 양반은 개인적으로 좀 아는데, 고려시대 전공이라 고대사도 잘 모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고정관념 못버리고 아무 생각없이 베끼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쪽이겠지요. 그러나 이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일본학계의 권위를 떠받들고 따라간다는 얘기니까. 아이고 힘들어서 이만....
  • ㅋㅋㅋ 2011/05/09 13:07 # 삭제 답글

    정말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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