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의 이유 └ 성고선생의 역사이야기

1998년 10월 8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수상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쉽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거기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로 한국국민에게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안겨준 사실을 사과했으며, 한 · 일 정상은 그러한 일본의 사과를 바탕으로 이제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자고 다짐했다.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한․일 양국간에 새로운 선린관계를 수립하자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불과 3년여가 흐른 지금은 어떤가? 일본은 역사교과서의 검정에서 국수적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자국사는 물론 전근대 · 근대의 한일관계사를 크게 왜곡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합격시킨 것이다. 이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얼마 전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행위 앞에서 어찌 한국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교과서는 민족주의에 가탁하여 한국역사를 폄하하고 일본의 잘못을 호도하는 내용을 가득 담고 있다. ‘침략’을 ‘진출’로 바꾸고 만행의 상징인 위안부는 삭제했으며, 임나일본부설을 인정하고 임진왜란과 합방의 책임을 한국에 돌렸다. 한국의 대책반에서 그 교과서를 검토하여 최소한의 문제점만 지적한 부분이 35군데나 되는 것이다. 그 책은 일본이 아시아의 전역사를 거의 주도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며, 승리한 전쟁사와도 같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교육의 내용이 일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일본의 청소년들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 보지 못하고 우쭐한 기분으로 또 다시 아시아의 평화를 저해하는 사고를 한다면 일본은 물론 인류의 불행을 자초할지도 모른다.

20세기가 갈등과 전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화해와 협력의 시대이다. 지금 세계는 지역단위로 단결하는 추세이고 이미 EU와 아시아는 ASEM회의를 열고 있다. 아시아가 단결되기 전에 EU와 연대하는 것은 예상 밖의 현상이다. 아시아가 단결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의 패권주의로의 회귀이다. 한․일 파트너쉽 선언에서 두 나라의 결속을 다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시대적으로 아시아의 결속이 필요한데 왜 반대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물론 모든 일본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선량한 일본인들은 교과서 왜곡 사건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이 무너진 이후 극우세력이 성장하고 있으며, 경제위기 등 난국에 부딪친 일본정부도 자국의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그러한 움직임을 음성적으로 지원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우경화로 치닫는 것은 분명하다. 평화헌법을 고치자고 하고, PKO의 출병가능성을 거론하며, 신사참배를 공언하고, 교과서를 왜곡하려고 한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이러한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이 일본과 협력하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신냉전이 전개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평화는 상당히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에 엄중히 경고하는 것은 이러한 복합적 위기의식 때문이다.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우리는 좀더 냉철히 판단하여 치밀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정부차원의 정치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역사학계의 치밀한 학문적 반박이 수반되어야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그 실상이 좀더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교과서는 미래의 시민이 읽는 책이므로 그 의미와 영향력은 심대하다. 우리 위원회를 비롯한 한국정부 · 학계의 적극적이고 치밀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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