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 3 └ 성고선생 칼럼

그는 또한 마음(心)에 만리(萬理)가 포함되어 있으니 만리가 일심에 구비되어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므로 존심(存心)하지 못하면 궁리(窮理)할 수 없고, 궁리할 수 없으면 존심할 수 없다고 했다. 존심을 위해서는 경(敬)이 필요하고, 궁리를 위해서는 허심정려(虛心靜慮)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실로 격물치지를 하려면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의 명덕을 완전히 밝혀야만 사회의 혁신을 성취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주자의 실천도덕론이다.

요컨대 주희는 우주론에서는 정자의 철학으로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해석하고, 인성론에서는 그의 철학으로 『중용』을 해석해서 우주․인성을 일관하는 원리를 “誠”이라고 단언했다. 그 실천도덕을 설명하는데는 역시 그의 철학으로『대학』을 해석해서 격물궁리(格物窮理)를 역설했다.

주희는 4서집주로 범중엄 학파의 학풍을 계승하고, 강목으로 구양수 학파의 학문을 이어받아 송학을 집대성한 것이다. 인성론과 우주론을 연결해 도덕철학을 완성한 것은 “仁”의 연구요, 정윤론(正閏論)․명분론(名分論)은 군신의 의를 가르치는 “義”를 설명한 것이니 주희의 학문은 인의를 중시하는 중국 고래의 민족적 도덕의 계통을 이어 집대성한 셈이다. 요금(遼金)의 압박과 불노(佛老)의 횡행을 극복하고 새로운 유학사상을 확립한 것은 주자의 공이라 할 수 있다.

주희도 14세 때 선(禪)에 흥미를 가진 유병산(劉屛山)․유초당(劉草堂) 등에게 배워 자연히 석노(釋老)에 마음을 두었을 것이고, 그 자신도 “내가 15․6세 때 일찍이 마음을 선(禪)에 두었다”고 했고, “대개 석노에 출입한 지 10 여 년이 되었다” 고 한 바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40세 전후까지는 선(禪)에 마음을 두었으나 그 이후에는 유교 연구에 몰두한 것 같다. 그는 “대저 성인의 학은 마음(心)에 근본을 두어 이(理)를 궁구하고, 이(理)에 따라서 물(物)에 응하는 것인데 비해, 석씨(釋氏)의 학은 마음(心)으로서 마음을 구하고,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부린다”고 해 유심론(唯心論)적 불교는 유교와 합치하지 않는다고 배척했다. 뿐만 아니라 주희는 “사람마다 일태극(一太極)이 있고, 물건마다 일태극이 있으니 이를 합해서 말하면 만물은 일태극에 체통(體統)하고, 이를 나누어서 말하면 물건마다 각각 태극을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일물(一物) 중에 천리(天理)가 구비해서 서로 가차(假借)하지도 않고, 서로 능탈(陵奪)하지도 않는다. 비하자면 하늘의 달은 하나뿐인데 흩어져서 강호(江湖)에 곳곳에 보이는 것은 달이 갈라져서 그런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한 것은 화엄(華嚴)의 십현연기(十玄緣起)의 설명을 듣는 것 같다. 그러나 주희는 직접 화엄경을 인용한 것이 아니고 정자 등이 이미 도입한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도학(道學)은 처음에 불교에 의해 개조된 유학이었으나 주희가 나와서 불교와 절연해서 독립의 기치를 든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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