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담로(擔魯) 3 └ 역사일반

여기서 부남은 캄보디아이고, 탑등은 인도 북부에서 생산된 페르시아 양탄자이며, 곤륜은 인도차이나의 한 나라라고 한다. 이런 지역과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기록으로 보아 백제가 이 지역에 진출해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기록들이 과연 백제가 이 지역을 통제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 앞에서 제시된 일본서기 기록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자.

부남(扶南)의 재물을 보냈다는 내용은

백제의 성명왕이 전부 나솔 진모귀문 , 호덕 기주기루, 물부 시덕 마기모 등을 보내어 부남의 재물과 노 2구를 보냈다.

라는 기록 중에 나타나는 것이다. 탑등을 보냈다는 것도

(상략) 좋은 비단 2필, 탑등 1령, 도끼 300구, 사로잡은 성의 남자 둘과 여자 다섯을 바친다. (하략)

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 기록들은 백제가 사신을 보내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기껏해야 ‘부남의 재물을 보냈다’든가 ‘탑등을 바쳤다’라는 정도로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물건이라면 굳이 백제가 동남아시아 같은 곳에 진출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당시 활발했던 국제교역을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즉 굳이 인도차이나 같은 곳에 진출해있지 않더라도 그 지역의 물건은 당나라 같은 제3국의 상인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단편적인 기록만으로 백제가 이런 지역에 진출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백제의 담로가 파견되어 지배했다는 증거는 더더욱 될 수 없다.

‘곤륜(崑崙)의 사신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는 기록은 더욱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이 기록의 앞뒤 내용을 연결시켜 살펴보자.

백제 조문사의 처소에 보내어 그쪽 소식을 물었다. (중략) 백제 조문사의 종자(從者) 등이 ‘지난해 11월 대좌평 지적(智積)이 죽었습니다. 또 백제 사신이 곤륜 사신을 바다에 던졌습니다’(하략)

방송에 소개될 때에는 전체적인 기록의 내용이 거두절미되어 ‘백제가 백제에 온 곤륜의 사신을 바다에 빠뜨려 죽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여주듯이 기록 전체를 놓고 보면 결코 그렇게 해석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곤륜의 사신을 죽인 당사자는 백제의 사신이다. 세상에 자기 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는 나라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백제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어디서인지는 몰라도 제3국에서 사신끼리 벌어진 사건일 뿐이다. 이 사건은 백제와 곤륜의 관계를 보여줄 중대한 사건으로 취급된 것도 아니다. 단순히 시비가 붙어 벌어진 살인사건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사건의 내용이 일본서기 에 들어가게 된 과정도 음미해보아야 한다. 우선 이 내용은 백제의 사신에게 공식적으로 전해들은 것부터가 아니다. 왜인들이 백제 사신의 종자(수행원)에게 이 얘기, 저 얘기 뒷담화 형식으로 전해듣는 과정에서 사건의 배경까지 생략된 채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백제가 자기나라에 찾아온 곤륜의 사신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을 만큼 통제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짓은 사실 망신거리다.

이와 같이 해외에 파견된 담로의 존재를 증명한답시고 제시된 이야기들은 왜곡․조작을 통하여 나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대륙이나 일본에까지 백제의 담로가 파견되었다는 주장이 어떤 것인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실 해외지역까지 백제가 담로를 파견해서 지배했다는 시나리오에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당시 백제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는 고사하고 일본지역조차 장악하고 있지 못했다. 이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은 삼국사기 에 나타난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눌지 마립간 후반기부터 소지 마립간 때까지 왜의 신라 침략이 어느 때보다 빈번하고 격렬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 시기가 바로 나제동맹이 맺어져서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의 침략에 서로 군대를 보내 도와주던 때이다. 이런 시기에 왜는 백제의 동맹국인 신라를 군사적으로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상국(上國)에게 절실한 군사지원을 해주는 동맹국을, 그것도 군사지원을 해주고 있는 시점에 공격하는 제후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일본열도 곳곳이 백제의 담로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었고, 왜왕 역시 백제의 제후 정도에 불과한 세력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백제 담로의 파견 영역이 대륙과 일본열도까지 걸쳐 있던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결론 지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끝내기는 약간 허무한 감도 있으니 논란 하나 정도 덧붙여 보자. 교과서에 설명된 담로는 방,군,성의 지방 제도를 마련하기 이전에 한정된 시기에만 실시된 제도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담로라는 말이 ‘읍성(邑城)’,‘성읍(城邑)’,‘대성(大城)’을 뜻하는 백제말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즉 담로체제는 성(城)을 중심으로 지방을 다스리던 통치방식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전 국토를 구석구석 세밀하게 관리하기 어려웠던 고대국가에 있어서 성(城)은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중요한 거점이 된다. 이런 거점 중심의 지배체제가 백제 후기라고 해서 필요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당연히 담로체제도 백제가 존속했던 전시기에 걸쳐 실시된 제도라는 것이다.

사실 방,군,성이라는 개념은 행정구역을 어떻게 정하느냐는 문제다. 이에 비해 담로는 백제 중앙정부가 지방에 왕족 같은 요원을 파견해서 다스린다는 개념이다. 따지고 보면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나름대로 새겨보아야 할 시나리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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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0/11/16 04: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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