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眞平王) 53년 여름 5월에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반란을 꾀하였다. 왕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칠숙을 붙잡아 동시(東市)에서 목베고 아울러 구족(九族)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도망하여 백제 국경에 이르렀다가 처와 자식을 보고싶은 생각에 낮에는 숨어 있고 밤에는 걸어 총산(叢山)에까지 돌아와,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고 해어진 나무꾼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무를 지고서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잡혀 처형되었다.유신과 미실의 관계도 친밀했다. 미실이 유신에게 ‘나의 아들은 어리석고 약하니 도와주기 바란다’고 하자 유신은 ‘신이야말로 실로 어리석습니다. 형은 비록 약하나, 그 도(道)는 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라며 미실을 안심시키고 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하는 관계가 아니었음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선덕여왕을 보호하기 위해 미실 일파와 대립한 것처럼 나오는 문노도 화랑세기에는 다르게 나타난다. 그는 세종에 충성을 바쳤다고 한다. 그래서 미실에게도 충성을 바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문노는 미실의 명령으로 설원과 미생에게서 스승으로 받들렸으며 또 미실의 덕을 입어 설원에게서 풍월주의 지위를 이어 받았다. 혼인도 미실의 동생인 윤궁과 했다. 말년에는 윤궁에게 휘둘리며 살았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미실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천명공주를 죽인 것으로 나오는 대남보도 화랑세기에는 천명공주의 남편 용춘이 총애하던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대남보 역시 용춘에서 진심어린 충성을 바쳤다고 한다.
이 정도면 화랑세기가 후세의 위작이건 아니건 드라마가 역사 기록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관계를 창작해 냈다는 점을 확인될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 반란 장면도 실제의 역사에 나타날 리가 없다. 드라마 속에서 미실의 반란에 충직한 부하로서 참여한 칠숙과 석품에 관한 기록만 보아도 그 점을 알아 볼 수 있다. 그 기록을 보자.
선덕왕(善德王) 14년 겨울 11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라는 내용밖에 없다. 삼국사기에 칠숙과 석품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것뿐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칠숙과 석품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발각되는 바람에 반란은 일으켜 보지도 못하고 체포된 것이다.
드라마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반란을 일으킨 비담에 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다. 비담의 반란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16년(647)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廉宗) 등이 말하기를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하여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8일에 왕이 죽었다.
진덕왕(眞德王) 원년(647) 정월 17일에 비담(毗曇)을 목베어 죽였는데, 그에 연루되어 죽은 사람이 30명이었다.
신라본기에 나오는 내용은 이 정도뿐이지만, 김유신 열전에 더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이 길기는 하지만, 선덕여왕의 진영에 별이 떨어지는 불길한 일을 김유신의 꾀로 극복해냈다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니 생략해도 될 것 같다. 단지 ‘비담 등이 패하여 달아나자 추격하여 목베고 9족(族)을 죽였다’는 내용은 참고해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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