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전주청국장 음식

어른 모시고 학술회의 갔다가 했던 점심.

개인적으로 청국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 나름이니...

이 집은 이런 식으로 준다.



단지 조심할 점. 여기는 청국장 이외의 메뉴가 없다.

메뉴에 김치 불고기가 있으나 낚시용 메뉴이니 조심.

그러니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같이 갈 때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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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녕보첩 투고받은 글

{돈녕보첩}은 유일하게 돈녕부에서 작성한 보첩이며, 왕친와 왕비친을 수록한 보첩이다. {돈녕보첩}은 성종대부터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조선 전기 {돈녕보첩}은 현존하지 않는다. 양란으로 전부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돈녕보첩}이 다시 작성되기 시작한 것은 1648년(인조 26)이다. 돈녕부에서 돈녕직과 족친위 대상자를 이조․병조에 보고할 때 근거할 자료가 없어 {돈녕보첩}의 작성을 청하였다. 이로 인하여 다시 식년마다 {돈녕보첩}이 작성되기 시작하였다.

{돈녕보첩}은 {종친록}과 {유부록}처럼 세로로 기재되었고, 대왕 편과 왕후 편으로 구성되었다. 기재 내용은 등재 인물의 차서, 이름, 직역이었다. 차서와 직역은 이들이 돈녕직 대상인지 족친위 대상인지 파악하는 근거가 되었다. {돈녕보첩}은 왕실의 혈통을 기록하기 위한 보첩이 아니라 돈녕부 공문서 성격이 강하여 돈녕부 관할 대상자 위주로 수록되었다. 따라서 다른 선원보첩류에 비해 수록 인원이 적고, 차서도 출생순으로 정리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돈녕보첩} 대왕 편의 수록 대상은 동성친 9촌, 이성친 6촌 이내다. 조선 후기에 촌수와 대수를 동일시하여 {돈녕보첩} 대왕 편에는 왕의 동성친 9세손, 이성친 6세손까지 수록하였다. 다만 왕의 모든 친족이 수록되는 것이 아니라 족친위 입속 대상자와 돈녕직 대상자 위주로 싣고 있어서 {선원록}과는 차별된다.

{돈녕보첩} 왕후 편은 왕비․세자빈의 친족을 수록하고 있다. 왕비의 친족은 동성친 8촌, 이성친 5촌까지며, 세자빈 친족은 동성친 6촌, 이성친 3촌까지다. 1648년(인조 26)에 작성되기 시작한 {돈녕보첩} 왕후 편은 매우 소략하고, 친족의 수록 원칙이 없었다. 주로 부계 친족을 중심으로 왕후의 아버지나 왕후의 조부 또는 증조부를 기점으로 왕후의 직계 친족이 주로 수록되었다.

그러다 영조대에 왕후의 친족 수록 원칙이 세워졌다. 1739년(영조 15)부터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어 {돈녕보첩} 왕후 편이 제작되었다. 왕후의 친족은 부계․모계․조모계․외조모계가 수록되었다. 부계는 고조부로부터 왕후의 8촌인 왕후 남자 형제들의 6세손까지, 모계는 외증조부로부터 왕후의 5촌인 외종질까지, 조모계는 조모부로부터 왕후까지, 외조모계는 외조모부로부터 왕후의 어머니까지 해당되었다.

{돈녕보첩} 왕후 편 말미에 세자빈 친족도 수록된다. 세자빈은 거의 왕비로 책봉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돈녕보첩}에 실린다. 그러나 남편이 세자로서 사망한 경우에는 영원히 세자빈으로 남게 되어 {돈녕보첩} 왕후 편 말미에 실린다. 정조는 계속 세자빈으로 남게 된 이들의 보첩을 {돈녕보첩} 왕후 편에서 따로 떼어내어 {세자빈보첩}을 만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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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코다리 냉면 음식

아는 분 찾아 갔다가 얼떨결에 얻어 먹은 점심.

주 메뉴는 황태와 코다리 냉면.

취향이 맞지 않아 주 메뉴 아닌 왕만두를 시켜보았지만.
기본반찬은 이런 정도.


왕만두는 이렇게...


메인 메뉴 황태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여기 두어번 들러 동치미 냉면을 시켜 보았지만, 항상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낚시용 메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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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록3 투고받은 글

{종친록}과 {유부록}은 <그림 4>, <그림 5>와 같이 가로로 7줄을 그어 대수를 표시할 수 있게 하고, 대수에 따라 한 칸씩 내려가면서 내용을 세로로 기재하고 있다.

이러한 {종친록}과 {유부록}의 편찬체재는 1681년(숙종 7) {선원록}으로 개수되면서 변화되었다. {종친록}과 {유부록}을 통합하여 {선원록}이라 개칭하였다. 기재 순서는 {종친록}을 먼저 기재하고, 뒤에 {유부록}을 기재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기재 형식, 기재 내용, 수록 범위가 달라졌다. {선원록} 편찬체재의 변화는 조선 후기 양반가 족보 편찬체재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우선 기재 형식이 양반가의 족보 형식으로 바뀌었다. 대수에 따라 한 칸씩 내려서 내용을 세로로 기재하는 것보다 가로를 줄을 그어 칸에 기재하는 것이 알기 쉽다는 이유로 기재 형식을 바꾸었다.

기재 내용도 ‘내상외략’이라 하여 남계(男系)는 상세히 기재하고, 여계(女系)는 간략하게 적는다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 원칙은 수록 대수의 차별화로 나타났다. {종친록}과 {유부록}에는 남계든 여계든 수록 대수가 동일하게 왕의 6세손까지였다. 그러나 개수된 {선원록}은 남계의 수록 대수가 여계와 같을 수는 없다고 하여 남계는 왕의 9세손까지로 늘였다. 또한 딸은 따로 표기하지 않고 사위 이름을 대신 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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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골안사 옆 케잌하우스 윈 음식

목요일 마다 빵 보급을 받는다.
어른들 단골인 곳.
대개는 이런 품목을 사는데...


조각케잌도 제법 괞찮다.

식빵과 샌드위치, 핫도그빵


맛은 괞찮은 편이나, 최대의 문제는..
비싸다. 어른들 지원 없으면 내돈으로 사먹기는 부담스러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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